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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얻은 정보

지지다/부치다/볶다/덖다

by ʡ 2017.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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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지다/부치다/볶다/덖다

 

음식을 익히는 방법은 불을 직접 이용하는 경우와 물을 이용하는 경우 그리고 기름을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불을 직접 이용하는 것을 굽는다고 하고, 물을 이용하는 것을 삶는다고 하며, 기름을 이용하면 튀긴다고 한다. 이 가운데에서 물을 이용하는 방법이 좀 다양하다. 끓는 물에 집어넣어서 익히는 것을 삶는다고 하고, 물을 아주 적게 넣어 바특하게 익히는 것을 지진다고 하며, 물에 넣지 않고 겅그레를 이용하여 김을 쏘여 익히는 것을 찐다고 한다.

 

 

이처럼 '지지다'는 '삶다'와 '찌다'의 중간 정도에 있는 요리범이다. 전통 음식으로 호박지짐이나 무지짐이는 이렇게 국물을 바특하게 해서 끓여 만들었다. 그러나 요즘은 이런 의미의 '지지다'는 거의 쓰이지 않고 있다. '지지다'는 달군 쇠 판의 열을 이용하여 익히는 요리법으로 쓰인다. 마치 불에 달군 인두로 사람의 살을 지지거나, 담뱃불로 얼굴을 지지듯이 열을 재료에 직접 닿게 하여 익히는 것을 지진다고 한다. 그런데 지지려면 판에 재료가 들러붙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서 기름을 바른다. 기름은 열전도율이 높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판의 열을 재료에 옮겨 줌으로써 재료가 더 빨리 익도록 돕는다.

 

 

'지지다'가 번철에 기름을 바르고 재료를 넣어 익히는 것을 뜻하면서 '부치다'와 의미가 같아졌다. 빈대떡을 부쳐 먹을 수도 있고 지져 먹을 수도 있다. 두부를 부쳐 먹을 수도 있고 지져 먹을 수도 있다. 어느 경우나 과정과 결과가 똑같다. 그래서 '지짐이'나 '부침개'는 같은 말로 쓰이는 것이다. 그런데 달걀을 번철에 지지거나 부치면 '프라이'한다고 한다. 달걀이라고 해서 꼭 '프라이'한다고 해야 할 이유가 없다. 달걀을 부치거나 지진다고 해서 안 될 바 없다. 달걀을 삶아 먹을것인가 지져 먹을 것인가? 아니면 기어이 프라이할 것인가?

 

그런데 어떤 재료는 기름을 바르지 않고 익히기도 한다. 콩, 깨  등은 판에 넣고 열을 가하면서 이것들을 자주 뒤집어 주면 익게 되는데 이런 방법을 볶는다고 한다. 또 어떤 재료는 자체 가지고 있는 물기를 이용하여 살짝 익히기만 하는데 이를 덖는다고 한다. 찻잎, 약재 따위를 냄비나 솥에 넣고 이렇게 살짝 덖은 뒤에 말리는 것이다. 미역국을 끓일 때에도 먼저 미역을 덖은 뒤에 물을 부어야 된다. 처음부터 미역을 물에 넣고 끓이면 미역이 불어터지게 된다.

 

'지지고 볶는다'는 말은 사람을 몹시 못살게 구는 행위를 가리킨다. 벌겋게 달궈진 번철 위에서 익을 때까지 시달려야 하는 상황을 염두에 둔다면 아이가 얼마나 귀찮게 굴면 "얘는 제 엄마만 보면 지지고 볶는다."라고 하는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머리를 파마하는 것을 머리를 볶는다고 하고, '고데' 머리를 지짐 머리라고 순화한 것도 일리 있는 일이다. 이 모두가 머리를 지지고 볶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출처=남영신의 한국어용법핸드북|모멘토|남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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