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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는데.
세 번째 항암 치료를 하고 나흘째 되는 날 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손이 부어서 물건을 집을 수 없고
손발 끝에선 더 이상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거울 속엔 다른 사람이 있었고 하루 종일
구역질을 하다가 화장실로 가는 길은
너무도 가팔랐다.
살기 위해 반드시 먹어야 한다는
알약 스물여덟 알을
억지로 삼키다 보면 웃음이 나왔다.
나는 이제 내가 정말 살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다.
오늘 밤은 제발 덜 아프기를
닥치는 대로 아무에게나 빌며,
침대에 누우면 천장이 조금씩 내려앉았다.
나는 천장이 끝까지 내려와
내가 완전히 사라지는 상상을 했다.
그러면 기뻤다.
아픈 걸 참지 말고 그냥 입원을 할까.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병동에서는,
옆자리에서 사람이 죽어간다.
사람의 죽음에는 드라마가 없다.
더디고 부잡스럽고 무미건조하다.
- 살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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